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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02-12-24 14: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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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나설리반메이시(Anne Sullivan Mac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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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
조홍중
 조회 : 12,568  추천 : 6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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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나 설리반 메이시(Anne Sullivan Macy)
안나 설리반 메이시(Anne Sullivan Macy, 1866~1936) 설리반은 아일랜드에서 미국 메사츄세스주의 스프링필드로 이민한 가난한 부모에게서 태어났다. 그녀가 10세때는 구빈원(救貧院)에 보내지는 등 불우한 소녀 시대를 보냈다. 그녀는 어려서부터 눈의 질병으로 인하여 거의 전맹(全盲)의 상태였기 때문에 1880년 10월 14세의 설리번은 퍼킨스맹학교에 입학하게 되었다.
1886년 보스턴에 있는 퍼킨스맹학교를 수석으로 졸업했다. 다행하게 그녀의 시력은 나중에 어느 정도 회복되었다. 1886년 졸업하자 퍼킨스맹학교의 안나 그노스교장으로부터 헬렌켈러의 가정 교사로 추천을 받아, 1887년 1월까지 약 6개월간의 준비기간 중에 로라 듀이 브리지맨(1829~1889, 유명한 盲聾學者- 퍼킨스 맹학교에서 하우의 교육을 받음)의 교육을 한 하우박사(1801~1876, 盲聾敎育의 개척자)의 보고서를 통해서 많은 것을 배웠다.
설리번은 1세 8개월경에 걸린 병으로 시력과 청력을 잃어버린 6세 된 헬렌켈러의 가정교사로 일하게 되었다. 1887년 3월부터 설리번에 의한 헬렌켈러의 교육은 시작되었다. 그것은 헬렌켈러가 만6세 9개월 때이다. 헬렌켈러는 1세 8개월경에 걸린 질병으로 인하여 청력과 시력을 잃고, 6세 9개월까지 어떠한 교육도 받지 못하고 방치되었다. 헬렌켈러의 가족은 군인(대위)인 아버지와 어머니, 그리고 오빠 제임즈와 4인 가족이었다. 헬렌켈러는 1세 8개월경 이후 매우 건강하였으며 혈색이 좋았으며 망아지처럼 쉬지 않고 뛰어다녔다.
그녀는 손에 닿는 모든 물건을 만졌으며 만지는 물건은 무엇이고 부수고 말았다. 헬렌켈러는 처음 설리번을 만났을 때 그녀는 설리번의 얼굴과 옷과 핸드백을 만져보고 설리번의 핸드백을 뺏으려고 했다. 설리번의 트렁크가 도착하였을 때는 헬렌켈러는 트렁크를 여는 것을 도와주었다. 그리고 트렁크에서 퍼킨스맹학교 소녀들이 보낸 인형을 보고 기뻐했다. 그때 설리번은 지금이야 말로 헬렌켈러에게 말을 가르칠 좋은 기회라고 생각하고 헬렌켈러의 손바닥에 천천히 지문자(指文字)로 d-o-l-l 이라고 쓰고, 그리고 인형을 가리키며 끄덕였다. 끄덕인 것은 준다는 신호이다. 헬렌켈러는 누군가에게 무엇이 필요한 때 필요한 물건을 가르키고 그리고 나서 자기 자신을 가리키며 끄덕였다. 설리번은 후에 우물의 물을 손으로 떠서 그 차가운 물체가 물이라고 하는 언어로 표현한다는 것을 끈기있게 지문자(指文字)로 가르쳤다.
퍼킨스맹학교를 갖 졸업한 겨우 20세인 설리번은 헬렌켈러에 대해서 상황에 따라 촉각을 환기시켜서 언어학습을 시도한 것이다. 이러한 인형이나 물은 헬렌켈러에 있어서 교재 교구로서 동기부여의 역할을 하였다고 할 수 있다. 이와 같이 장애 상태에 따라 적절한 교재 교구를 사용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이와 같이 설리번은 인내와 창의력을 발휘하고 수화용 알파벳을 사용하여 1개월 만에 헬렌켈러에게 사물에는 이름이 있다는 것을 가르쳐주었다. 그리하여 설리번은 로라 브리지맨(Laura Bridgman, 1829~1889)에게서 성공한 후, 2번째로 농아인 아이에게서 의사소통을 할 수 있다는 것을 증명했다. 설리번은 헬렌켈러가 부모로부터 지나치게 과보호를 하고 있는 헬렌켈러를 엄하게 훈련하기 위해서 가족과 떠나서 독립된 집에서 생활하면서 교육을 하였다.
헬렌켈러가 완전한 어휘력을 구사하고, 천재의 기질을 보여주었기 때문에 다음해에 헬렌켈러와 설리번은 전국적으로 유명해졌다. 설리번은 헬렌켈러와 함께 래드클리프대학(매사추세츠 주 케임브리지 소재)에 다니면서, 1904년 헬렌켈러가 졸업할 때까지 그녀를 위해 책을 읽어주고 손바닥에 강의 내용을 써주었다.
헬렌켈러에 대한 성공적인 교육은 기적이 아니며, 노력의 결과였다고 볼 수 있다. 그 점에서 헬렌켈러는 2가지 면에서 행운이 따랐다. 첫째는 헬렌켈러로부터 빛과 소리를 앗아간 유아기의 열병은 그녀의 지능에는 아무런 나쁜 영향을 미치지 않았다는 점이다. 둘째는 헬렌켈러는 훌륭한 교육자인 설리번여사를 만났다는 점이다.
그 후 설리번은 1905년 문학비평가이면서 사회주의자인 존 앨버트 메이시(Macy. J. A)와 결혼하였으나, 그의 결혼은 약10년 밖에 지속되지 못하고, 메이시 부부는 1913년 헤어졌다. 그 후 헬렌켈러와 설리번은 세계여행을 자주 하면서 강연과 공연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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